[온 말] 키루스의 실린더, 최초의 인권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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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세계시민포럼 상임대표)

 

 

십여 년 전인 2010년에 내가 선사시대 인류의 길을 찾기 위해서 역사 시대 실크로드를 따라서 유적들을 추적하던 때에 이란 지역을 조사하던 중에 테헤란의 국립박물관에서 특별한 전시를 보았다. 주먹보다 좀 더 큰, 술통처럼 생긴 흙덩이를 박물관 입구의 큰 홀의 중심에 있는 유리장에 단독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유명한 키루스의 실린더 Cyrus Cylinder’이다. 이란의 아흐마니네자드 대통령 시절에 대영박물관이 팔레비 왕조 때 이후 두 번째로 이란에 넉 달 동안 귀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그리 잘 알려진 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 유물이 오늘날 세상에 말하는 메시지는 천둥 같은 소리일 수 있고 또 천둥소리가 되어야 할 만하다. 왜냐하면 팔레비 왕은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이라고 말하였고 지금도 이란 사람들은 이 유물의 가치를 그렇게 믿고 있다. 특히 디지털로 세상이 연결되었고 또 소위 글로벌리즘이 팽창하고 있는 오늘날 극심한 변화의 와중에 있는 세계를 보면 이 고대 유물이 가지는 가치가 새롭게 돋보이는 시점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지만 신바빌론을 멸망시킨 이란 왕이 바로 아케메네스 왕조(Archaemenid Empire)를 열었던 키루스 대왕이다. 키루스는 바빌론에 잡혀 와서 노예로 있던 사람들을 풀어주면서 돌아가서 그들의 신을 섬기고 살라고 하면서 모두 풀어 주었다. 바빌론의 노예들을 해방해 준 것이다. 당시에 이곳에 잡혀 왔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신을 섬기고 자신의 나라를 세워 살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아카디안 설 형 문화로 기록한 것이 바로 키루스의 실린더라고 불리는 흙으로 만들어 구운 양주 배럴 통 모양의 비문이다. 이 비문은 지난 19세기 말에 지금은 이라크 땅이 된 바빌론의 에스길라나는 신전에서 발굴된 것인데 당시 발굴자인 라쌈에 의해서 대영박물관에 가져간 것이다. 비문의 해석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당시의 도시 문명국가들이 광대한 지역에서 온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것과 이들을 통치하는 키루스의 정치 이념에서 문화 다양성이 고려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요즘 많은 인문 사회학계에서는 탈식민주의에 대한 논란이 지속된다. 탈식민의 궁극적인 목표는 문화 다양성을 통한 평화일 것이다. 다른 민족이나 문화를 억누르고 살았던 시대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정세는 또 다른 형태의 강자 우월주의가 압도하고 있다. 강자는 더욱 강자가 되고자 하고 약자는 영원히 고정된 약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적 힘의 논리가 더욱 팽배해진다는 느낌이다. 2,500년 전 당시에는 분명 실질적인 인간 해방으로 이스라엘인들을 포함한 노예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신과 문화를 가지고 살아갔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 고향을 잃고 서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은 문명의 패러독스가 아닐까... 우리가 마음을 열고 역사에서 배워야 할 시대이다. 특히 2500년 전은 문명사에서 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던 시기여서 키루스 실린더의 의미가 더욱 찡하게 다가오는 것은 내 마음뿐이겠는가....

 

 

사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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