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 베트남 청동 북, 첫 만남의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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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호(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요즘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소식 중 가장 한 것은 역시 박항서라는 한국인 축구 감독이 베트남에서 국가 차원의 영웅이 되었다는 소식일 것 같다. 그가 베트남에서 영웅이 된 이유는 항상 아시아 하위권을 맴돌던 베트남 축구를 단숨에 아시아 정상권으로 도약시킨 점과 이대로만 간다면 베트남 축구가 곧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약진할 것이라는 꿈과 희망을 베트남 국민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밝고 즐거운 소식이다. 과거에 필자가 접했던 베트남 관련 뉴스는 베트남 전쟁과 이후에 발생한 피난민들 소위 보트 피플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필자가 지닌 베트남에 관한 생각은 후자에 속하는데, 다만 개인적으로는 전공과 관련해서 관심사 중 하나로 베트남 청동 북을 한 번쯤은 실물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을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다는 것이 나의 베트남에 대한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차에 직업상 드디어 베트남의 고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기회가 생겼고, 나는 전시업무의 담당자가 되어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2013, 나는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 시각이 한밤중이었던 까닭에 처음 마주하는 베트남의 모습이라는 것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저 깜깜하고 고요한 바깥 풍경이 전부였다. 숙소가 있는 도심의 중심부에 다다라서야 가로등 불빛에 비친 도로와 간간이 지나는 차량 그리고 오토바이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싱겁지만, 베트남에서의 첫날은 지나갔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 눈 앞에 펼쳐진 하노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도로를 가득 메우고, 교통신호를 기다리는 오토바이의 행렬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을 정도였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기에 그저 신기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심지어는 오토바이의 물결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생기와 활력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생경한 바깥 풍경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늘 보고 싶어 했던 청동 북을 이제는 만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은 약간 부풀어 있었다. 업무를 위해 숙소를 나서서 베트남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하던 중 길가에서 마주친 홍보용 배너에 나는 깜짝 놀랐다. 도로변을 따라 걸려있는 배너 속 그림에는 반짝이는 태양의 모습, 하늘을 날고 있는 커다란 새 그리고 각종 기하학 문양들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그림의 모티브가 바로 청동 북의 고면(鼓面)에 새겨진 문양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청동 북에 대한 인기와 대중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리로 치면 김홍도의 풍속화 중 씨름정도에 비견할 수 있는 인지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선사시대 유물이 지닌 대중적인 인지도치고는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베트남 국립 역사박물관에 도착해서 전시실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 부분에 있는 기획전시실에서는 때마침 베트남의 청동기시대를 주제로 한 기획전이 개최되고 있었고, 기획전의 대표 유물로 청동 북 여러 점이 전시실 중앙에 전시되고 있었다. 박물관 소장품 중 상태가 좋은 청동 북은 모두 전시된 것 같았다. 베트남 전시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역시나 그렇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는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이유는 잔뜩 고대했던 만남이 너무 쉽게 성사된 탓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청동 북은 기획전의 대표 유물답게 고면(鼓面)의 지름이 1m가 넘는 대형에서부터 10cm 정도의 소형까지 크기가 다채로웠으며, 또한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도 시기나 출토지역에 따라 시문 된 내용의 구성이 매우 다양함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전시 효과가 매우 높은 유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베트남 청동 북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성사되었고, 얼마 후에 전시품 중 대부분을 한국 전시를 위해 모셔 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청동 북에 대한 자료조사도 진행되었다. 청동 북의 특징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청동 북의 분포지역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는 중국의 양쯔강 유역, 동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카이(Kai) , 서쪽으로는 벵골만 유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분포범위가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양적인 측면과 종류에 있어서는 베트남 북부와 중국의 운남, 광동, 광서의 장족 자치구 등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10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중국 남서부 지역의 소수민족들이 근세까지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동 북의 기능은 악기, 신호 구, 유력자의 위세품, 무덤의 껴묻거리 등 매우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베트남 청동 북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청동 북의 기원지와 편년에 대한 이견이다. 갈등의 주체는 중국과 베트남 측의 전문가들이며, 만일 중국 측 전문가들의 주장과 같이 청동 북의 기원이 중국의 소수민족에게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이 난다면, 베트남으로서는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동남아시아 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주도적으로 형성하고 계승한 것은 베트남 민족의 기원을 이룬 비엣족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를 부인당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청동 북에 관한 연구의 추이를 봐서는 좀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필자로서는 차라리 영원한 숙제로 남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첫 만남의 설렘이 허망해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¹.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베트남 고대 문명전, 붉은강의 새벽, 2014.7.12.~9.10.

 

 

사진 설명

1. 베트남국립역사박물관, 청동북 전시 모습. 제공: 신영호

2. 청동 북, 베트남, 기원전 5세기~기원후 1세기,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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