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_18.01.12.금>[인터뷰]정우탁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장 "세계시민교육은 지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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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 36년째 맞은 정통 유네스코맨…"한국, 국제사회와의 협력 절실"
"글로벌 의제 주도해 뿌듯"…"통일 위해서도 다문화교육 지평 넓혀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어려운 이웃 나라를 돕고 건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은 보은이나 인도주의적 차원의 이슈만은 아닙니다. 만일 외국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우리나라는 북한 이상으로 곤경에 빠질 겁니다. 세계시민교육을 통해 우방을 많이 만드는 것은 생존이 달린 지상 과제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유네스코 아태교육원)의 정우탁(62) 원장은 11일 서울 구로구 새말로 아태교육원 집무실에서 진행된 신년 인터뷰에서 "다문화가족지원법 개정에 따라 오는 5월부터 유치원과 초중고 교원에 대한 다문화 이해교육이 의무화되는 것을 계기로 교사 대상의 세계시민교육 연수와 해외 교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은 아태지역 국제이해와 평화교육을 위해 2000년 8월 한국 정부와 유네스코 본부의 협정에 따라 그해 9월 설립됐다. 교육자 역량 강화, 정책 개발, 네트워크 강화 등에 힘을 쏟아왔으며 세계시민교육을 글로벌 어젠다로 내세워 커리큘럼 개발 등을 주도하고 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딴 정 원장은 1982년부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30년간 재직하며 기획실장·협력사업본부장·정책사업본부장을 역임하고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도 근무했다. 2012년 12월부터 3년간 제4대 아태교육원장으로 재임한 뒤 2016년 2월 5대 원장으로 연임해 임기 1년 1개월을 남겨놓고 있다.


다음은 정 원장과의 일문일답.


--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의 설립 배경을 말해 달라.

▲ 1997년 11월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 총회에서 아태교육원 설립을 제안하자 이듬해 타당성을 조사한 유네스코 본부는 "아시아 지역에서 갈등과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이 가장 많은 국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네스코 한국위가 국제이해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왔고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 다른 지역에는 비슷한 성격의 기관이 없는가.

▲ 유네스코 산하에 회원국 정부가 지원하는 다양한 기관이 있지만 우리처럼 세계시민교육에 특화된 활동을 하는 곳은 없었다. 2012년 인도에 마하트마 간디 평화·지속가능발전교육센터(MGIEP)가 세워져 우리와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고 있다.

-- 아태교육원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소개해 달라.

▲ 2012년부터 해마다 해온 교사 교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다문화가정 대상국과 우리나라 교사를 맞바꿔 각기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다. 아태지역 교사들을 초청해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도 형성한다. 교재 개발, 국제 콘퍼런스 개최, 대학 강좌 지원 등도 해왔다.

-- 올해 주요 사업계획은 무엇인가.

▲ 온라인 연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어와 불어뿐 아니라 스페인어와 아랍어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세계시민교육 커리큘럼을 각국 교과과정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도 주요 목표다. 캄보디아는 내년부터 실시되는 교육과정에 포함했다. 올해 몽골·콜롬비아·우간다가 교사 지침에 세계시민교육을 반영하기로 했다. 이 추세라면 2030년까지 30여 개국 커리큘럼에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법 개정에 따라 교사에 대한 다문화 이해교육이 5월부터 의무화되는 만큼 관련 부처나 기관과 적극 협력할 방침이다.

-- 다문화 이해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은 어떻게 다른가.

▲ 공통적인 가치를 지향하고 있으나 세계시민교육이 더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념이다.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지구촌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다문화가 주로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가정을 뜻하는 용어로 인식되다 보니 잘못된 선입관을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문화학교로 지정하면 부모들이 아이를 안 보내려고 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구로·금천·영등포구를 세계시민교육특구로 지정하려고 구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소득이나 문화 격차 등에서 비롯된 차별 문제가 대두할 것이다. 다문화교육이 이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양성 존중을 넘어서 인권과 평등의 철학을 담고 책임 있는 실천까지 아우르는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하다.

-- 세계시민교육이 글로벌 의제로 부상한 과정을 설명해 달라.

▲ 세계시민교육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12년 제안한 '글로벌 교육우선구상'(GEFI)의 3대 우선순위에 포함된 데 이어 2015년 5월 인천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교육포럼에서 2030년까지의 글로벌 교육목표로 선정됐다. 그해 9월 유엔 총회가 채택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도 우리나라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세계시민교육이 포함됐고, 이듬해 5월 경주에서 '세계시민교육-유엔 SDGs 이행을 위한 협력'이란 주제로 유엔 NGO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아태교육원이 로드맵을 만들고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커리큘럼을 보급하는 등 핵심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도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 한국이 이를 주도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지금까지 유네스코와 유엔은 학교를 짓고 비문해(문맹) 퇴치운동을 벌이는 데 주력해오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어떤 내용을 가르칠지 제안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지원은 하드웨어와 달리 효과 측정이 힘들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국이 글로벌 의제를 주도한 것도 처음이지만 국제개발협력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이나 공공외교에도 크게 기여했다.

-- 세계화 추세와는 반대로 난민과 테러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자국중심주의가 노골화하고 있다. 유네스코도 그 영향을 받는 듯하다.

▲ 미국을 중심으로 그런 경향이 나타나 우려를 자아낸다. 그래도 유네스코는 지금까지 해온 일과 앞으로도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든든해 뿌리가 흔들리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각국의 협력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류가 상생을 위해 힘을 합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세계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확산해야만 이를 더욱 앞당길 수 있다.

-- 국내에서도 외국인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반다문화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 교통·통신의 발달로 비교 대상이 많아지고 국제이주가 늘어나 생기는 현상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보니 사회적 약자인 이민자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야말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글로벌 공동체의 혜택을 많이 받아왔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굶주림을 달래고 고아들이 보살핌을 받았으며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앞으로도 원자재 수입이나 상품 수출이 아니면 경제를 지탱할 수 없다.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것은 인도주의 차원은 물론 국익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다. 국제회의에 가보면 남미, 중동, 아세안, 아프리카, 북유럽 등의 나라들이 공통의 이해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주변 국가와의 갈등 요소가 많고 이해관계도 엇갈려 섬처럼 고립돼 있다. 우리의 진정한 우방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 1980년대 초반 유네스코 한국위에 들어갈 때는 국제기구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우연히 학교에 붙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결혼할 때 처가에서 월급은 제대로 주는 곳인지 걱정하더라. 그때는 해외여행도 쉽지 않았을 때인데 값진 경험을 많이 했다. 지금은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위상이 놀랍도록 커졌고 젊은이들도 선망의 직장으로 여기고 있으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정우탁 유네스코 아태교육원장은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외적으로 반다문화 현상이 일고 있긴 하나 지구촌 문제와 한국의 현실을 깊이 생각해보면 국가 간 상생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아태교육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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