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_17.09.18.월> '나야 나' 아니라 '나와 너' 생각하는 시민 키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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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_17.09.18.월> '나야 나' 아니라 '나와 너' 생각하는 시민 키웁시다.

[함께하는교육] 세계시민교육 사례 나눔


‘세계적인’, ‘타인’, ‘평화’, ‘문화’, ‘생각’, ‘다양성’, ‘비판적 존중’, ‘이해’.

멘티미터(mentimeter·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사용자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한 화면에 보여주는 사이트)에 영어 단어가 떴다. ‘당신을 세계시민으로 만드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참가자들의 사전 답변이었다. 현장에서 똑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변혁적인’, ‘비폭력’, ‘젠더’, ‘숨쉬기’(무의식적으로 하는 숨쉬기만큼 중요하다), ‘상호의존성’, ‘절충’이란 단어가 추가로 나왔다. 참가자들은 이 의견을 흥미롭게 여기며 서로 생각을 주고받았다. 호세 로베르토 게바라 교수(오스트레일리아 RMIT대학 국제개발학과)가 세계시민교육을 주제로 타운홀 미팅을 진행한 자리였다.

교육부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이하 아태교육원)이 13~14일 ‘2017 세계시민교육 국제회의’를 열었다. 50개국 세계시민교육 전문가와 실천가 400여명이 참가해 세계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방법,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 실천 사례를 공유했다. 타운홀 미팅도 이 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문학작품, 영화 통해 다른 국가·민족 이해


“더 나은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 무엇을 개발해야 할까요?”

게바라 교수가 다시 질문했다. 참가자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에 노출되는 경험”, “나와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인내와 용기”, “리스펙트”(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대화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 “톨레랑스”(관용)라고 답했다. 추상적 단어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시민교육의 가치를 담은 말을 함께 고민하고 이를 교과서 내용과 연계하거나 활동으로 확장해보자는 의미가 담겼다.

테러와 난민 문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과 맞물려 전세계적으로 국가주의, 보호주의 흐름이 일고 있다.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문제다. 국내에서도 성별 또는 문화에 따른 차별과 혐오 범죄, 아동학대 범죄가 늘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이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세계평화’, ‘인권’, ‘문화 다양성’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책임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2015 세계교육포럼 개최를 계기로 새로운 국제 교육 의제로 떠올랐다.

이날 참가자들은 각국의 세계시민교육 현장 사례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카자흐스탄의 미라스 국제학교 문학 교사인 엘비라 사르세노바는 문학 작품을 통해 세계시민교육을 했다. 그는 지난해 아태교육원의 교육자 연수에 참가하며 평화를 위해서는 세계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규 교육과정에 없는 교과라 읽기 활동 시간에 작품을 따로 선정해 세계시민교육 내용을 다뤘다.

“카자흐스탄은 130개 이상 민족이 있고 우리 학교에도 20개국이 넘는 출신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지역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문학 작품을 통해 그 시대,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생각했는지 이해하길 바랐다.”

사르세노바는 “스마트폰만 좋아하고 책 읽기는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인 배드 컴퍼니>(In Bad Company)를 권했다. 러시아가 다민족 국가이기도 하고 더불어 사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며 “작품을 읽은 뒤 주인공이나 작가의 시선에서 문제에 접근하며 비판적 사고 능력도 기르게 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과 아스타나 지역 관광지도도 만들었다. 현지인들과 외국에서 온 이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상징하는 프로젝트였다. “학생들이 자신이 사는 곳을 조사하며 정체성을 찾는 동시에 외부인의 시각에서 개선할 점이 없는지 등을 고민하는 계기도 됐다. 활동 이후 학생들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질문을 수업시간에 많이 한다. 성평등, 인권, 아동권리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는 함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고 있다.”


브렉시트·난민 등 국제 이슈 접하며
극단주의적 사고 하는 청소년 늘어
세계평화·인권·문화다양성 등 다루며
책임있는 시민으로 키우자는 목적
다민족 국가, 무슬림에 대한 편견 등
차별·혐오 등 고민하고 주변 관심 갖게


교과 떠나 ‘방관하지 않는 법’ 배우기


세계시민교육이라고 하면 다문화 이해 교육이나 사회·도덕·영어 등의 교과와 연관 짓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과목의 특정 내용(이론)보다 세계시민성의 사고방식, 행동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니자미아 안달루시아 초등학교 교사 위댜묵티 아립 위착사나는 정보통신기술(ICT) 과목을 담당한다. 컴퓨터 과목 자체만으로 세계시민교육을 하기 힘들어 평화를 주제로 영화 축제를 열었다. 학생들이 직접 평화를 주제로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무슬림국가다. 전세계적으로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무슬림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다른 이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아이들은 ‘왕따 반대’, ‘자존감’, ‘인도네시아의 역사’ 등 저마다의 시선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만든 영상을 함께 보며 다른 학생들의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 위착사나는 “초등 저학년에게 세계시민교육 관련 개념을 설명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 교육은 어릴 때 시작할수록 결과가 더 좋으며 국제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고 경험하면서 내용을 체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영화 축제 형식을 빌려 알려주듯 교사나 연구자가 학생들이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교육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개념 정의가 안 돼 있고 이 교육을 무겁게 느낀다. 이날 사례 발표를 한 최성우 교사(부산 배정고)는 담당 교과인 영어를 가르치거나 세계시민교육 동아리 지도를 하기 전 <당신은 세계시민인가>(마트 게이어존 지음, 에이지21 펴냄)를 필독서로 건넨다. 그는 “원어민과 영어 대화를 하는 것, 입시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든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활동해야 깊이 느낄 수 있다. 책을 통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른 나라 문화,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세계시민교육은 ‘방관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고 나만 잘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엘바라 사르세노바(왼쪽)와 위댜묵티 아립 위착사나가 자신의 교육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유네스코 아태교육원 제공

최 교사와 함께 참석한 김성준군도 “선생님이 추천한 책에서 ‘당신은 이미 세계시민이고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글을 읽고 머리에 뭔가 맞은 느낌이었다”며 “이전까지 공정무역 상품 사는 걸 자선 행위라 생각했다. 동아리 활동하며 그 가격이 당연하고 합리적이라는 것, 값싼 초콜릿이 농부의 희생이라는 것 등을 알게 됐고 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했다.

네덜란드 교육부 소속의 도리너 판노런은 “국제 이슈에 대해 극단주의적 사고를 하는 청소년들이 늘었다.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만 갇혀 살며 바깥 사람과 융합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며 “교사들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중동, 홀로코스트, 팔레스타인 등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걸 피한다. 학교에 시민교육을 하도록 독려하지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진 못한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둔 인간애를 뜻하는 말인 ‘우분투’는 일종의 커뮤니티 철학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모두를 위한, 통합적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세계시민교육에 대한 국제적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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