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람] 배서영 PM의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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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세계시민포럼 기획팀장)


봄꽃을 기다리듯 전시를 기다렸다내면의 질문을 굴착하고 난 후 들려오는 미묘한 변화를 체감한 듯 세계시민포럼 배서영 미술 프로그램 프로젝트 매니저(PM)는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전시로 작품을 선보인다다섯 번째 개인전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로 인해 개막이 연기되었고 배서영 PM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배서영 PM은 세계시민포럼의 창의미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문화예술을 통한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미술교육자이자 작가인 배서영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세계시민포럼의 미술 프로그램 프로젝트 매니저로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소개해주세요.

 

2020년 여름에 세계시민포럼에 합류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Diversity’에 관련한 토론이 일상이었던 미국의 예술대학교에서 지내 온 시간 때문인지특정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획일화 되어 있거나 다원성을 잃은 모습을 보게 될 때면 우리가 정말 대화가 부족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였어요그래서 서로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공감의 소재를 제공하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솔직한 마음으로 세계시민포럼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그동안 삶의 다양한 모습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콘텐츠를 기획했고이런 내용을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창의미술교육프로그램에 담아보고자 노력했지요.

 


세계시민포럼 창의미술교육프로그램의 대상이 다문화 배경의 학생들이기에 단순히 프로그램 수혜자로서가 아닌 관계성에 대해 고민해오셨을 것 같습니다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운영은 무엇인가요?


특정 다문화 가정 아동들의 수혜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세계시민포럼의 창의미술교육프로그램이 추구하고자 하는 부분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다양한 어린이들이 미술을 매개로 소통과 교류의 방식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미술 프로그램 참여 학생 중에는 이주민 가정 자녀도 있을 것이고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한국 토박이인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진 가정 등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요그래서 다름을 다양성이라는 동등한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자세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배우게 된다면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욱 유연하고 건강하게 구성원들을 포용하며 모두가 인간다움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를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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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갈까요이전 작업이 삶에서 맺는 관계의 본질을 철과 콘크리트 같은 물성이 강한 재료로 표현했다면신작에서는 매체를 달리하며 그 관계에 대한 표현의 데시벨을 한층 높였다는 생각이 듭니다새로운 매체를 실험하며 준비하는 기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습니다일하며 작업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셨나요그리고 매체를 바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시점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 같아요이를테면, ‘내 삶’ 그 자체에 집중하여 바라보고 있던 저의 시야가 나의 삶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요소들로 향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시점의 변화를 이루게 된 직접적 계기는 있지만그 계기가 단 하나의 이유로 규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문득 생각해보니오로지 미술만 생각하고 작업만 하던 시기가 제 삶에는 대학생 때와 학부를 졸업한 직후 외엔 없는 것 같습니다거의 항상 일과 작업을 병행하였던 것 같아요. ‘이라는 것이 노동과 재화로서 삶에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와 그 경계의 지점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연계하는 역할을 하더라구요그것을 통해 나를 객관화 하는 관점을 배우기도 하고 내 생각에 함몰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힘들어도 일과 병행하며 작업하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나 작가로서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성장의 한 부분에는 세계시민포럼에서 만난 관계들과 시간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에서 만나게 되는 신작은 작가가 귓전에 대고 관계의 상실과 평범한 사물에 각인된 은유에 대해 그믐밤의 적막처럼 조용히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그러다가도 석재화병과 조화시들어가는 꽃과 과일의 질감과 양감이 사진이라는 매체로 대비되며 관계적 삶과 생()의 의미에 대한 이율배반적 해석이 교차합니다지금의 나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데요작업을 구상하며 프레임에 대비적 요소들을 담고 그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작가로서 부담이 컸을 것 같습니다.

 

시대를 대변하는 유형의 것 (사물)’들이 있는데그중에 공동 묘지에 형형색색으로 꽂힌 플라스틱 조화가 대표적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특히생화 보다 더 예쁘고 더 생생하고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활짝 핀 조화들이 공동 묘지의 쓰레기통 안에 버려진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그 만개한 꽃이 만약 생화라면 그렇게 쉽게 버리지 않았을 거잖아요조화는 현대 사회의 를 향한 집착에서 비롯된 창작물이기도 하지만동시대에 만연한 하이브리드 인스턴트’ 문화의 대표적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활짝 핀 모습의 이지만자연으로 순환될 수 없거나 또 다른 사물로써 사용의 의지를 갖지 못할 때는 가차 없이 우리 시야의 바깥으로 밀려나 버립니다모든 것이 쉽고 간편해졌기 때문이죠소유하는 것과 버리는 것을 너머 상실을 향한 애도조차도 간편해지고 획일화 되어 버린 것이죠.

이로써우리 삶 속 사물의 주기는 더 이상 자연의 몫이 아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더 이상 죽음의 반대말이 ’ 또는 잉태가 아닌 죽지 않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그래서 이 죽지 않음이 결국 현재 죽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일 수 있지 않을까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그리고 그것은 곧 제의를 위한 우리의 행동 양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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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을 나누고 나니 필연적으로 각자의 삶에서 마주하고 있을 살아 있음과 죽지 않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다른 계절로 꽃이 피고 시들어가고 있고우리는 무심히 심지어 무참히 생명이 짓밟히고 있는 시대를 살아내려 오늘도 애쓰고 있다.

배서영 작가의 <정물시리즈가 주는 울림이 크고 오래 남는다가던 길을 잠시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어서 일까.

 

 

사진 정보

1. 배서영 <정물부분, 2022, 185x85cm, Pigment print

2. 세계시민포럼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어린이들

3. 배서영 PM


배서영 개인전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

2022.03.25.~04.15

아트랩반(Art Lab Ban,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29,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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