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말] ‘성악설’과 지속가능사회 구축을 위한 폭발적 ‘휴머니즘’
09-26
배기동(세계시민포럼 상임대표)
“성악설(性惡說)”과 “휴머니즘(humanism)”, 이 두 단어는 전혀 조화롭지 못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다룰 줄 알면 세상에 무엇이든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반 푼이 인류학자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말이다. 왜냐고? 내가 어릴 적에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교실이 없는 1학년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동란 이후의 어려운 사회 속에서 성장하여 그 어려움이 아직도 몸에 배어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더 지독한 시간을 보냈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후의 어수선한 사회 속에서 몸을 간수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국동란(韓國動亂, 6・25전쟁), 정말 지옥 같은 세월을 보내고 살아남아 오늘날 한국을 만들어 내었다. 압박과 설움과 파괴의 세월을 감내하고 살았던 세대다. 그런데, 지구 어디에서 살든 간에 온 세상이 디지털 기술로 온갖 정보가 어디든 퍼지는 마당에 오늘날 진행되는 여러 곳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보면서 그 사회가 감당해야 할 후유증, 그리고 그 속의 남성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여성과 어린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서 지독한 휴머니스트는 아니지만 문뜩 어릴 적 그리고 아버지들의 세월을 떠올리며 인간의 본성 타령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처참한 현실보다도 좋은 곳을 알지만 어쩌지 못하고 그 속에서 죽고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동서양의 철학을 막론하고 인간이 원래 선한가? 또는 악한가? 이 논쟁은 가장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리고 아직도 취중천국에서 펼쳐지는 무공해 술안주이기도 하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면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머리속을 채울 것이다. 그럼 어느 것이 맞을까?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지만 원론적인 입장, 즉 생물학적인 입장에서는 성악설이 맞을 것이다. 생물계에 ‘선과 악’이 있는가? ‘선과 악’이라는 말은 인간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인간의 용어이다. 생물은 선과 악의 입장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이고 집단이나 종으로 말하자면 ‘절멸로 가는가?’ 또는 ‘살아남아 번성할 것인가?’ 절체절명의 문제이다. 여기서 ‘악’하다고 하는 말은 생물의 세포, 즉 유전자가 증식하려면 항상 주변의 아미노산을 섭취하여야 한다. 즉 주변의 자원을 차지하지 않으면 그 유전자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나 쇳덩이같이 그러한 물성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우리 몸뚱아리는 단단한 뼈, 그리고 신의 손이 아니면 창조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살로 이루어져 있는 신비스러운 우주이고 적당히 노출을 곁들인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으면 멋진 모습에 반하게 되지만, 유전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단지 ‘깡통’일 따름이다. 흔히 유전자 운반 그릇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미래로 가려는 시간 열차인 셈이다. 그래서 생물의 개별 유전자 복제, 즉 생물의 자손 번식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사람은 ‘악’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은 바로 본성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려면 경쟁자가 없어야 하는 것이 생존경쟁의 법칙이다.
그런데 신의 묘수는 다른 곳에 있다. 허약한 인간이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안된다는 것을 신도 알고 계셨던 셈이다. 그래서 ‘다 함께 도와가며 평화롭게 살아라!’라고 인간에게 사회적 생물로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사회적 생물, 개미나 벌도 사회적 생물이지만 인간이라는 사회적 생물은 특별하다. 의식을 가지고 있고 미래를 보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고 나서 전쟁은 끊이지 않았지만, 인류는 아직 절멸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사회성이 인간의 욕망을 이겨낸 셈이다. 그런데, 이제 일어나는 전쟁을 보면서 그러한 과거 패턴이 맞을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듯하다. 무기의 파괴력은 더 커지고 또는 극단적으로 전 인류에게 치명적일 수가 있고 환경오염과 변화 역시 인간의 생존에 궁극적 위협 요소이다. 인간 생존과 진화의 방패라는 사회성은 그 자리인데 무기 성능이나 환경오염의 위험 요소, 즉 창이 더 세어지는 셈이니 인류가 절멸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지구시민’이라는 생각이 절실한 시절이다.
지구가 하나의 사회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져야 미래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방패를 수리하기 위해서 인류의 지혜를 모을 때이다. 5만 년 전*의 휴머니즘의 폭발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지구촌이 하나의 사회가 된 지금 세상에서 '우리'가 아직도 종족적 범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문명의 아이러니이다. 이젠 '지구시민의 선(善)문명'을 '우리' 마음에 심어야 할 때이다.
* 인류의 창조력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벽화와 같은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등 문화를 발전시킨 Homo sapiens sapiens(슬기슬기 사람)이 출현한 시기
사진 출처 :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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